1.10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실제로 죽으셨고,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깊이 연결된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옛 삶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했을까요? 성경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언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이 175번 이상 나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하면서,

예수님 대신 가룟 유다가 죽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없으면, 기독교의 구원의 기초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누가복음 9:28~31)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죽어서 천국에 있는 모세와, 육체를 가진 채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직접 땅에 내려와서 예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구약의 요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 12:40)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도 3일 동안 무덤에 계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단순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피가 아닙니다.

이 피는 하나님의 거룩한 피이며,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믿음의 중심이 됩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없다면,

  •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고
  •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 천국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깊이 연구한 옥타비우스 윈슬로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신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없으면, 죄의 짐을 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피가 닿으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는 죄를 씻어주는 능력과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적인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이 말씀은 우리가 자주 듣는 찬양 가사에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익숙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단어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믿음은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 소망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 사랑은 책임을 동반해야 합니다.

책임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보면, 결혼 서약을 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합니다.

즉, 사랑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C. S. 루이스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사랑할 때 당신의 가슴은 고통으로 미어지며, 완전히 무너지기도 한다.

만약 아무 상처도 입지 않기 원한다면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는 조건 없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은 인정하면서도, 부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사도행전 2:27~31)

놀라운 점은,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다른 사람처럼 영원히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어서 무덤에 묻혔지만, 예수님은 죽음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사도행전 13:33~37)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사람은 썩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시편 16:10)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그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부터 부활 신앙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불립니다.

이 장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누구에게 나타나셨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린도전서 15:4~11)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단순히 말씀으로만 증명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나타나셔서 증거하셨습니다.

  • 베드로(게바)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도 보이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로 증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믿음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린도전서 15:12~19)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의미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 우리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
  •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죽은 후 부활할 소망이 없으니, 영원한 생명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거짓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7~58)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승리의 확신을 줍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거듭나고, 새로운 생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부활의 소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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