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예정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시간을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계획하시는 예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확실한 교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정 교리입니다. 하지만 예정 교리를 이해하려고 하면 곧바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예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정’이란 미리 정하거나 예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기독교 신학에서 예정은 구원과 관련된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성도를 미리 선택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개념은 바울의 편지에서 등장하며,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루터에 이르기까지 강조되었습니다. ‘미리’라는 접두사(Pre-)는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뜻이며, ‘목적지’(destination)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예정 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종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견해가 이 단어의 정의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정 교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정하시고, 그들을 반드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1. 성경에서 예정이 있는가?
성경에는 예정에 대한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언서 전체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예정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정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인간의 삶과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지만, 결국 사람의 길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나님께서 지도하시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거룩하고 흠 없이 만들기 위해 우리를 예정하셨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9)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믿음을 주셨고, 이를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계획이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성경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십니다. 이것을 예정이라고 하며, 사실 성경을 읽을 때 이 개념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와 시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하셨음을 명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 1:5)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계셨고, 선지자로 세우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없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분의 놀라운 계획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부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계획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태에 있을 때에도 우리를 직접 만드셨음을 시편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습과 성장 과정까지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2. 택함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성경에서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1) 택함 받은 사람
수많은 진흙 중에서 선택된 일부만이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부르시지만, 실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1,000명 중 501명이 택함을 받고 499명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999명이 거부당하고 1명만이 택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전 세계 77억 명 중 단 한 명만이 선택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베드로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들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1:9)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로 예정된 것입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그 선택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로마서 8:33)
그렇다면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48)
택함 받은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당신을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2) 선택받지 못한 사람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서 높은 온도를 견뎌야 합니다. 그 후 색을 칠하면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원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시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탓하시는가? 누가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가?' 하겠지만, 20 이 사람이여,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려는가? 만들어진 것이 만든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으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또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느냐?" (로마서 9:17~24)
우리는 원래 진흙과 같은 먼지 같은 존재였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진흙들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는 귀한 그릇이 아니냐?"라고 불평할 수 있을까요? 토기장이는 원하는 모양과 용도로 그릇을 만들고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릇으로 사용하실지, 사용하지 않으실지는 그분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을까요? 또는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선택된 사람이 있는 반면, 선택되지 않은 사람도 많이 나옵니다. 모세는 선택받았지만, 애굽 왕 바로는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하나님께서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사람이 바로입니다.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애굽기 3:19~2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로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애굽기 7:12~13)
첫 번째 기적인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을 보고도 바로는 마음이 완악했습니다.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 악취가 나며,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애굽기 7:21~22)
두 번째 기적인 나일 강이 피로 변했을 때에도 바로의 마음은 완악했습니다.
이후 개구리, 파리 떼, 악성 종기, 메뚜기, 흑암, 우박 등의 재앙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끝까지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장자가 죽었을 때, 바로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게 했습니다.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출애굽기 12:29~31)
이러한 바로의 모습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한 것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에게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출애굽기 10:1~2)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악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후대에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모세와 바로처럼 선택된 사람과 선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야곱과 에서, 요셉이 꿈을 해석해준 술 관원장과 떡 관원장,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오른편과 왼편의 강도, 이삭과 이스마엘 등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라고 말합니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다서 1:4)
신약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록된 자이며, 경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왜곡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시는 그릇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예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성경에는 예정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만,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왜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살펴보겠습니다.
(1) 교단의 차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R. C. 스프로울>에서는 "모든 교회가 예정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루터교와 성공회조차도 예정에 대한 견해가 다릅니다. 이렇게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생각할 때 예정 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께서 예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교단 안에서도 예정 교리에 대한 해석이 다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예정 교리를 깊이 가르치지 않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성도들도 예정 교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교단에서조차 예정에 대해 깊이 논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정 교리는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제 그 이유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2) 계획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정 교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는가?
- 우리가 미래로 갈 수 있는가?
- 우리가 미래의 일을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가?
- 우리가 미래의 일을 계획하고 반드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요"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시간 자체를 만들 수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들에게 내일 족발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다음 날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집에 갈 수 없게 되면,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내일 사랑하는 자녀에게 족발을 사주겠다"고 계획하셨다면, 그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의 차이입니다. 인간의 계획은 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없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R. C. 스프로울>에서는 "우주에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난 단 하나의 분자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3) 운명에 대한 오해
예정 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운명을 정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선택받아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예정 교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R. C. 스프로울>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정 교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자유가 인간의 자유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4) 악의 존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대적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탄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욥기에서는 하나님과 사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받았지만, 하나님은 욥이 죽지 않도록 제한을 두셨습니다. 결국, 사탄은 하나님께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탄도 미리 예정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R. C. 스프로울>에서는 "악이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사탄이 있지만, 사탄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5) 자유의지와 예정
예정과 자유의지는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입니다. 예정이 있다면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고, 자유의지가 있다면 예정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은 예정과 자유의지를 모두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은 죄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선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일한다면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이므로 죄가 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죄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있는 한, 죄도 존재합니다.
4. 예정에 관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강제로 믿게 하시면 되지 않을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있으신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답은 분명히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므로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제로 믿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믿게 하신다면, 사람의 자유의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사랑과 믿음도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강제로 어떤 행동을 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강요받아서 하는 행동은 자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을 강요하시기보다,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강제로 구원받게 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며, “정말 나를 사랑하셨다면 강제로라도 믿게 하셔서 구원해 주셨으면 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예를 들어,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정부가 모든 시민이 법을 어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미리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 사회는 자유가 없는 억압적인 곳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강제로 막아버리시거나, 모든 사람이 억지로라도 믿도록 만들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제로 믿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도록 이끄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예레미야 20:7)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믿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권유하시고 초대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을 찾도록 하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편 120:1)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우리가 힘든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시고, 결국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강제로 억누르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완악함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전서 1:18~19)
즉, 하나님은 우리가 강제로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믿음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을 따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양심을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은 일부 사람만 구원하시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실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우리보다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시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무조건 구원하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를 들어, 천국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된다면, 영원토록 서로 싸우고 갈등을 겪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것이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할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고 해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결국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천국의 질서를 깨뜨릴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은 천국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기 때문이라" (신명기 7:7)
이스라엘 민족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다른 민족보다 우월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의 기준에서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 것 아닌가요?"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전부터 공평이라는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공평함’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신 것과 같으니라" (로마서 9:13)
이는 하나님이 에서에게 불공평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서 야곱을 택하셨고, 그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구원의 길로 부르셨지만, 모든 사람이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만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영역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즉, 하나님은 누구든지 믿고 따르는 사람을 받아주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적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시는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열어 두셨고,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3) 모든 것을 주관하시면, 사람에게는 죄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면, 사람의 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셨다면, 사람이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가? 그렇다면 사람이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왕에게 권세를 주셨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로마서 9:15-21)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고집을 부린 것은 자신의 결정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바로왕이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왕으로 태어나 권력을 가졌지만,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바로가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과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계획하셨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든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만,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천국에 가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 당신이 천국에 있는 집을 지었는가?
-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이유가 충분한가?
- 당신이 천국에 가기 위해 무엇을 기여했는가?
당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질문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요?
- 당신이 부모를 선택했나요?
-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만들었나요?
-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했나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기대와 다르다고 불평합니다. 인생이 50년이면 50년, 100년이면 100년, 그것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은 자기 덕분이라 여기고, 나쁜 것은 하나님 탓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는 그 자유를 통해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셔도,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5. 자유의지를 가지신 예수님
하나님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는 다르지만, 성경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의지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36~46)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에, 하나님께 이 고난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처음에는 달라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자유의지를 사용하셨고, 우리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이신칭의>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예수님을 통해 그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에 얼마나 변함없고 신실하신지를 역설하는 바울의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바울에 따르면, 믿음을 통하여 인간을 의롭다 하심은 아브라함과 한 번 하신 약속과, 그에게 맹세하시고 모세에게 계시하셨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치신 언약에 하나님이 얼마나 충실하신지를 입증한다. 이신칭의 교리는 ‘인간 역사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엄청난 주제를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 별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절정이자 최고조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워지고 활력을 얻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변함없이 계획을 이루셨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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